뉴스플러스
남윤철 선생님, 남윤철 동문, 아니 내 사랑하는 제자 남선생
- 15.04.08 / 조영문
물질 만능주의에 휩쓸려 안전 불감증 속에서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살고 있던 우리 모두에게 스승으로서의 ‘참된 길’, 그리고 ‘의로움’을 알려주고 남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이제 며칠 있으면 일년입니다. 남선생, 정말 보고 싶어요! 지난해 갑작스런 남선생과의 이별이 너무도 황망하고 슬프고 안타까웠고, 한편 남선생의 의로운 행동을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고, 또한 국민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동문이며 내 제자라는 데 크나큰 자긍심도 느꼈지요. 그러나 남선생의 아름다운 마음, 제자사랑 그리고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잘 알기에 우리는 그저 이별을 슬퍼하기만 하고 울기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가 남선생 희생의 그 뜻을 잊지 않고 받들어 안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남선생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말입니다.
남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며 실천으로 보여 준 “진정한 사랑”, “희생정신”을 기리고 본받고 배우고 실천하고자 남선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남선생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어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고 있습니다.
남선생, 여기 기억나죠? 북악관, 한때는 2호관으로도 불렸던 국민대학교의 가장 높은 건물의 7층, 주로 영문과가 강의실로 사용하던 708호실 앞입니다. 이 층에는 시청각실이 있고 8층에는 언어교육원이 있어서 남선생이 나를 많이 도와주던 바로 그 곳이에요. 1998년 3월 입학해서 2005년 영문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2년 반의 교육대학원 과정을 마쳤으니 학교졸업 후 8년여 만에 다시 온 거로군요. 남선생은 학부다닐 때는 솔선수범하며 책임감이 투철했던 모범생이었고, 대학원 시절에도 학과 일에 적극적이고 동료들과 서로 격려해가며 순수와 열정을 불태우던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지요. 이십대 젊은이로서 미래의 꿈을 키우고, 훌륭한 교사가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던 북악관에 오늘 비록 눈으로는 만날 수 없고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이 708호실은 남선생이 4학년 때 이자원 교수님과 함께 ‘고급 영어 특강’을 공부하던 강의실입니다. 창밖으로는 북한산이 보이죠? “훌륭한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하며 해맑게 웃던 순박한 모습의 남선생이 이 강의실 저 편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군요.
내가 아는 남선생은 왜 이렇게도 순진하고 착한 모습뿐인가요? 그래서 남선생과의 너무 이른 이별이 더 애절하고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어요. 과제물을 낼 때면 항상 “부족해서 죄송합니다”하며 겸손해 했고, MT 준비차 같이 장보러갔었을 때 “자네만 무거운 짐 들고 이렇게 고생해서 어쩌나?”하고 물으니 “저도 먹을 건데요 뭐!” 라고 대답 했었지요. 참 착한 학생이었죠.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기에 남선생은 남들로부터 가족과 같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남선생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그냥 남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남선생님”이었어요. 2011년 6월 대부도에서 우리 만났던 것 기억나죠? 그 때 대부도에 근무했었지요. 대학 은사라고 나를 끔찍이 보살펴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함께 점심 먹던 식당 사장은 우리가 식사하는 내내 “우리 남선생님”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으셨지요. “이제 우리 남선생님 대부에서 몇 년 근무하셨으니까 곧 다른 곳으로 전근가시게 되죠?” “우리 남선생님 가시면 진짜 안 되는데. 우리 아이들한테 정말 큰일인데”라고 다른 곳으로 떠나 보내기 싫은 피붙이에게 말하듯 사랑을 담아 말하곤 했었지요. 남선생을 단순히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같은 선생으로서 내가 질투가 날 정도였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나는 남선생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었나를 알 수 있었어요. 아마 단원고로 전근을 가서도 남선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베푸는, 열정이 살아있는, 책임감이 있는, “우리 남선생님”이었을 거예요. 그래요, 남윤철 선생님은 영원한 “우리 남선생님”입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으로서 남선생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남선생, 오늘 우리는 이 강의실을 남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성스럽고 아름다운 장소로 봉헌하려 합니다. 남선생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리며 그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갈고 닦는 곳으로 말입니다. 바라건대, 남선생도 항상 우리 곁을 지켜 주시어 우리들이 남선생과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부디 이끌어 주세요. 특히 더 많은 후배들이 남선생처럼 후세를 교육하는 일에 뜻을 가지도록 격려해 주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세요.
이제 우리는 북악관 708호실에서 사랑하는 ‘우리 남선생님’을 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저는 여전히 애절하고 슬프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남선생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 남선생, 편히 잘 지내요! 남선생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남선생, 사랑합니다!
2015년 4월 8일 남선생을 사랑하는 부족한 스승 윤종열 씀
제목 | 남윤철 선생님, 남윤철 동문, 아니 내 사랑하는 제자 남선생 | 작성자 | 조영문 |
---|---|---|---|
작성일 | 15.04.08 | 조회수 | 10483 |
첨부파일 | 구분 | 학부공지 | |
물질 만능주의에 휩쓸려 안전 불감증 속에서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살고 있던 우리 모두에게 스승으로서의 ‘참된 길’, 그리고 ‘의로움’을 알려주고 남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이제 며칠 있으면 일년입니다. 남선생, 정말 보고 싶어요! 지난해 갑작스런 남선생과의 이별이 너무도 황망하고 슬프고 안타까웠고, 한편 남선생의 의로운 행동을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고, 또한 국민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동문이며 내 제자라는 데 크나큰 자긍심도 느꼈지요. 그러나 남선생의 아름다운 마음, 제자사랑 그리고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잘 알기에 우리는 그저 이별을 슬퍼하기만 하고 울기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가 남선생 희생의 그 뜻을 잊지 않고 받들어 안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남선생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말입니다. 남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며 실천으로 보여 준 “진정한 사랑”, “희생정신”을 기리고 본받고 배우고 실천하고자 남선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남선생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어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고 있습니다. 남선생, 여기 기억나죠? 북악관, 한때는 2호관으로도 불렸던 국민대학교의 가장 높은 건물의 7층, 주로 영문과가 강의실로 사용하던 708호실 앞입니다. 이 층에는 시청각실이 있고 8층에는 언어교육원이 있어서 남선생이 나를 많이 도와주던 바로 그 곳이에요. 1998년 3월 입학해서 2005년 영문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2년 반의 교육대학원 과정을 마쳤으니 학교졸업 후 8년여 만에 다시 온 거로군요. 남선생은 학부다닐 때는 솔선수범하며 책임감이 투철했던 모범생이었고, 대학원 시절에도 학과 일에 적극적이고 동료들과 서로 격려해가며 순수와 열정을 불태우던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지요. 이십대 젊은이로서 미래의 꿈을 키우고, 훌륭한 교사가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던 북악관에 오늘 비록 눈으로는 만날 수 없고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이 708호실은 남선생이 4학년 때 이자원 교수님과 함께 ‘고급 영어 특강’을 공부하던 강의실입니다. 창밖으로는 북한산이 보이죠? “훌륭한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하며 해맑게 웃던 순박한 모습의 남선생이 이 강의실 저 편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군요. 내가 아는 남선생은 왜 이렇게도 순진하고 착한 모습뿐인가요? 그래서 남선생과의 너무 이른 이별이 더 애절하고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어요. 과제물을 낼 때면 항상 “부족해서 죄송합니다”하며 겸손해 했고, MT 준비차 같이 장보러갔었을 때 “자네만 무거운 짐 들고 이렇게 고생해서 어쩌나?”하고 물으니 “저도 먹을 건데요 뭐!” 라고 대답 했었지요. 참 착한 학생이었죠.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기에 남선생은 남들로부터 가족과 같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남선생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그냥 남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남선생님”이었어요. 2011년 6월 대부도에서 우리 만났던 것 기억나죠? 그 때 대부도에 근무했었지요. 대학 은사라고 나를 끔찍이 보살펴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함께 점심 먹던 식당 사장은 우리가 식사하는 내내 “우리 남선생님”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으셨지요. “이제 우리 남선생님 대부에서 몇 년 근무하셨으니까 곧 다른 곳으로 전근가시게 되죠?” “우리 남선생님 가시면 진짜 안 되는데. 우리 아이들한테 정말 큰일인데”라고 다른 곳으로 떠나 보내기 싫은 피붙이에게 말하듯 사랑을 담아 말하곤 했었지요. 남선생을 단순히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같은 선생으로서 내가 질투가 날 정도였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나는 남선생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었나를 알 수 있었어요. 아마 단원고로 전근을 가서도 남선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베푸는, 열정이 살아있는, 책임감이 있는, “우리 남선생님”이었을 거예요. 그래요, 남윤철 선생님은 영원한 “우리 남선생님”입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으로서 남선생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남선생, 오늘 우리는 이 강의실을 남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성스럽고 아름다운 장소로 봉헌하려 합니다. 남선생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리며 그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갈고 닦는 곳으로 말입니다. 바라건대, 남선생도 항상 우리 곁을 지켜 주시어 우리들이 남선생과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부디 이끌어 주세요. 특히 더 많은 후배들이 남선생처럼 후세를 교육하는 일에 뜻을 가지도록 격려해 주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세요. 이제 우리는 북악관 708호실에서 사랑하는 ‘우리 남선생님’을 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저는 여전히 애절하고 슬프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남선생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 남선생, 편히 잘 지내요! 남선생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남선생, 사랑합니다!
2015년 4월 8일 남선생을 사랑하는 부족한 스승 윤종열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