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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경계없이 소통하다

  • 08.12.18 / 조영문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함께하는 ‘캠퍼스 건축 탐방’팀이 우리 대학을 찾았다.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으며, 변화를 통해 미래의 가치를 높여가는 생명의 장 캠퍼스. 서울문화예술탐방 명예스태프 이진희 씨의 탐방기를 통해 우리 대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동시에 새 시대에 발맞추어 변화해가는 건축물의 변화상도 조명해보고자 한다.

자연을 품은 소통의 공간
국민대학교 종합복지관 522호 강의실. ‘캠퍼스 건축 탐방’ 참가자 및 스태프가 모인 가운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옛 사진으로 만나는 국민대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국민대학교의 시초는 국민학원이었는데 첫 번째 교사였던 봉원사도, 봉원사에서 쫓겨나 자리하게 된 창성동 교사도 모두 일제강점기에 각각의 용도로 활용되다 버려진 것들의 재활용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국민대학교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 집중적으로 건물을 세웠고, 마치 수평선 다섯 개를 이은 듯한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 혹은 시대적 사명으로 공간을 확장해오면서 무엇보다 ‘경계의 소멸’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대학교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자연이다. 정릉 길을 수놓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자연을 그대로 품을 수 있는 너른 심성을 지닌 캠퍼스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길에서, 부드러울 리 없는 건축물들에서 자연친화적인 면모를 느끼게 만들었다. 자연과의 어울림에 이은 사람을 위한 건축은 2003년 정문을 없애는 것으로 본격화된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면서 교문을 버렸다. 그리고 아무 데나 드러누워도 되는 ‘그린캠퍼스’를 만들고자 캠퍼스 내에 차를 없애고, 주차라인에 화분을 놓았다.

7호관은 이름에서 나타나듯 건축 당시에는 그 용도를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깔끔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막힘이 없는 구조였다. 천장은 물론, 통유리로 되어 있는 벽들이 많아 마치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학교에 예술관이 생기고 나서는 교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술관의 멋진 복도와 자연스레 놓여있는 작품들에서 여유와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법학관은 교육 내용에 맞추어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니 사람이 공간에 맞추는 것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사방에서 빛을 환하게 빨아들이는 ‘빛의 복도’가 인상적이었다. 명원민속관, 서울시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자 국민대학교의 부속기관으로 국민대학교 후문에 자리하고 있다. 안채, 사랑, 행랑과 별채를 두루 둘러보고 난 후 안채에 있는 대청에 올랐다. 너른 대청에 방석을 깔고 한자리씩 꿰 차고 앉으니, 캠퍼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 보상을 받는 듯했다. 대청은 6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넓었고, 앞마당과 뒷마당이 탁 트여 있어 시각적으로도 시원함을 선사했다. 굳이 건축적으로 이곳의 의미를 되새김질하지 않더라도 명원민속관은 전통의 운치를 누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캠퍼스 건축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이 연일 부대끼는 공간이니 사회 속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움이랄지, 소통이랄지 하는 요소들 말이다. 국민대학교는 중앙이 뚫려 1층에서 천장을 바라 볼 수 있는 구조가 많았다. 유독 그런 건축물이 많은 이유를 묻자, ‘소통’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층과 층이 뚫림으로써 단절이 아닌 소통의 생기가 빛나게 된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경계없이 시선이 부딪힐 수 있는 소통으로서의 건축. 이 모든 요소를 국민대 캠퍼스는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출처 : 국민대학교 소식지 / 다른생각 다른미래 19호 / 이진희(서울문화예술탐방 명예스태프)

제목 자연과 사람, 경계없이 소통하다 작성자 조영문
작성일 08.12.18 조회수 17778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함께하는 ‘캠퍼스 건축 탐방’팀이 우리 대학을 찾았다.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으며, 변화를 통해 미래의 가치를 높여가는 생명의 장 캠퍼스. 서울문화예술탐방 명예스태프 이진희 씨의 탐방기를 통해 우리 대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동시에 새 시대에 발맞추어 변화해가는 건축물의 변화상도 조명해보고자 한다.

자연을 품은 소통의 공간
국민대학교 종합복지관 522호 강의실. ‘캠퍼스 건축 탐방’ 참가자 및 스태프가 모인 가운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옛 사진으로 만나는 국민대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국민대학교의 시초는 국민학원이었는데 첫 번째 교사였던 봉원사도, 봉원사에서 쫓겨나 자리하게 된 창성동 교사도 모두 일제강점기에 각각의 용도로 활용되다 버려진 것들의 재활용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국민대학교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 집중적으로 건물을 세웠고, 마치 수평선 다섯 개를 이은 듯한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 혹은 시대적 사명으로 공간을 확장해오면서 무엇보다 ‘경계의 소멸’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대학교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자연이다. 정릉 길을 수놓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자연을 그대로 품을 수 있는 너른 심성을 지닌 캠퍼스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길에서, 부드러울 리 없는 건축물들에서 자연친화적인 면모를 느끼게 만들었다. 자연과의 어울림에 이은 사람을 위한 건축은 2003년 정문을 없애는 것으로 본격화된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면서 교문을 버렸다. 그리고 아무 데나 드러누워도 되는 ‘그린캠퍼스’를 만들고자 캠퍼스 내에 차를 없애고, 주차라인에 화분을 놓았다.

7호관은 이름에서 나타나듯 건축 당시에는 그 용도를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깔끔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막힘이 없는 구조였다. 천장은 물론, 통유리로 되어 있는 벽들이 많아 마치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학교에 예술관이 생기고 나서는 교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술관의 멋진 복도와 자연스레 놓여있는 작품들에서 여유와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법학관은 교육 내용에 맞추어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니 사람이 공간에 맞추는 것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사방에서 빛을 환하게 빨아들이는 ‘빛의 복도’가 인상적이었다. 명원민속관, 서울시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자 국민대학교의 부속기관으로 국민대학교 후문에 자리하고 있다. 안채, 사랑, 행랑과 별채를 두루 둘러보고 난 후 안채에 있는 대청에 올랐다. 너른 대청에 방석을 깔고 한자리씩 꿰 차고 앉으니, 캠퍼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 보상을 받는 듯했다. 대청은 6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넓었고, 앞마당과 뒷마당이 탁 트여 있어 시각적으로도 시원함을 선사했다. 굳이 건축적으로 이곳의 의미를 되새김질하지 않더라도 명원민속관은 전통의 운치를 누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캠퍼스 건축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이 연일 부대끼는 공간이니 사회 속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움이랄지, 소통이랄지 하는 요소들 말이다. 국민대학교는 중앙이 뚫려 1층에서 천장을 바라 볼 수 있는 구조가 많았다. 유독 그런 건축물이 많은 이유를 묻자, ‘소통’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층과 층이 뚫림으로써 단절이 아닌 소통의 생기가 빛나게 된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경계없이 시선이 부딪힐 수 있는 소통으로서의 건축. 이 모든 요소를 국민대 캠퍼스는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출처 : 국민대학교 소식지 / 다른생각 다른미래 19호 / 이진희(서울문화예술탐방 명예스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