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국민대학교 경상대학

국민인! 국민인!!

해방뒤 20여년간 방치된 독립운동 사료 27권으로 묶어 펴내/조동걸(국사학과) 명예교수

  • 10.01.06 / 이민아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독립운동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전무하던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연구의 기틀을 닦고 후학들을 길러낸 대표적인 1세대 연구자로 꼽힌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69년 4월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위원장 노산 이은상)의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해방 이전 만주군 활동 경력과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친일파’라는 비판에 허덕이던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독립유공자 사업기금에 할당했고, 68년 7월 이 기금의 일부를 토대로 편찬위를 구성했다.
<독립운동사>(사진)는 해방 이후 20여년 동안 방치됐던 독립운동 관련 사료와 증언을 10년 동안 본편 10권과 자료집 17권으로 묶어 펴낸 대작이다. 조 명예교수의 제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이전에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개별적인 연구는 있었지만 <독립운동사>에 이르러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통사적으로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수집된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후학들의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장학자이던 조 명예교수는 ‘상임 조사·집필위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편찬위의 막내로 10년 동안의 편찬작업을 함께했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의 흐름을 의병항쟁(1권), 3·1운동(2·3권), 임시정부(4권), 독립군전투(5·6권), 의열투쟁(7권), 문화투쟁(8권), 학생독립운동(9권), 대중투쟁(10권) 등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자료집에서는 본편에서 인용한 자료들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한글로 꼼꼼이 번역해 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강원도 춘천교대 교원으로 무명이었던 그가 편찬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역사 현장을 발로 누빈 실증적 연구작업이 중앙 학계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에 발표한 ‘안중근 의사 재판기록상의 인물-김두성고(考)’ 에서 연해주에서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유해동 옹을 발굴해 ‘안중근 의사의 공판 기록에 등장하는 김두성은 의병장 유인석’ 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1970년 <사학학보>에 발표한 논문 ‘삼일운동의 지방사적 성격-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에서는 강원도 지역에서 진행된 3·1운동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서울지역에 국한돼 논의돼던 3·1운동의 민족사적 의미를 전국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제자들은 출신 학교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사 전 분야에 흩어져 있다. 의병장 신돌석을 연구한 김희곤(안동대), 광복군을 연구한 한시준(단국대), 조선의용군을 연구한 염인호(서울시립대) 등 독립운동사 2세대 연구자들이 망라돼 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국사학)는 “조 선생님 또래에서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가 없어 80년대 서울에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려는 대학원생들은 무조건 조 선생님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10년 넘게 한 교실에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동 강의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은퇴한 뒤 평생 모아 온 1만여권의 독립운동 관련 장서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그를 두고 “대단한 실증주의자이면서도 단재 사학 정신을 이어 받은 민족사학자”라고 평했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7262.html
출처 : 한겨레                    기사입력 : 2010-01-05 오후 09:15:16

제목 해방뒤 20여년간 방치된 독립운동 사료 27권으로 묶어 펴내/조동걸(국사학과) 명예교수 작성자 이민아
작성일 10.01.06 조회수 14609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독립운동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전무하던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연구의 기틀을 닦고 후학들을 길러낸 대표적인 1세대 연구자로 꼽힌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69년 4월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위원장 노산 이은상)의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해방 이전 만주군 활동 경력과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친일파’라는 비판에 허덕이던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독립유공자 사업기금에 할당했고, 68년 7월 이 기금의 일부를 토대로 편찬위를 구성했다.
<독립운동사>(사진)는 해방 이후 20여년 동안 방치됐던 독립운동 관련 사료와 증언을 10년 동안 본편 10권과 자료집 17권으로 묶어 펴낸 대작이다. 조 명예교수의 제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이전에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개별적인 연구는 있었지만 <독립운동사>에 이르러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통사적으로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수집된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후학들의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장학자이던 조 명예교수는 ‘상임 조사·집필위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편찬위의 막내로 10년 동안의 편찬작업을 함께했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의 흐름을 의병항쟁(1권), 3·1운동(2·3권), 임시정부(4권), 독립군전투(5·6권), 의열투쟁(7권), 문화투쟁(8권), 학생독립운동(9권), 대중투쟁(10권) 등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자료집에서는 본편에서 인용한 자료들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한글로 꼼꼼이 번역해 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강원도 춘천교대 교원으로 무명이었던 그가 편찬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역사 현장을 발로 누빈 실증적 연구작업이 중앙 학계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에 발표한 ‘안중근 의사 재판기록상의 인물-김두성고(考)’ 에서 연해주에서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유해동 옹을 발굴해 ‘안중근 의사의 공판 기록에 등장하는 김두성은 의병장 유인석’ 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1970년 <사학학보>에 발표한 논문 ‘삼일운동의 지방사적 성격-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에서는 강원도 지역에서 진행된 3·1운동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서울지역에 국한돼 논의돼던 3·1운동의 민족사적 의미를 전국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제자들은 출신 학교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사 전 분야에 흩어져 있다. 의병장 신돌석을 연구한 김희곤(안동대), 광복군을 연구한 한시준(단국대), 조선의용군을 연구한 염인호(서울시립대) 등 독립운동사 2세대 연구자들이 망라돼 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국사학)는 “조 선생님 또래에서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가 없어 80년대 서울에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려는 대학원생들은 무조건 조 선생님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10년 넘게 한 교실에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동 강의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은퇴한 뒤 평생 모아 온 1만여권의 독립운동 관련 장서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그를 두고 “대단한 실증주의자이면서도 단재 사학 정신을 이어 받은 민족사학자”라고 평했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7262.html
출처 : 한겨레                    기사입력 : 2010-01-05 오후 09: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