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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神話는 `李대리 노트`서 시작됐다 / 이충구(기계ㆍ자동차) 교수

  • 06.12.18 / 조영문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 이충구(기계ㆍ자동차) 교수
  • 한국 엔지니어 60인' 어떻게 선정했나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
  • [나의 삶 나의 꿈] 젊은 싹 틔우는 거름이 되고 싶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포니(PONY)를 만들 때는 와이퍼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처음 하는 일이었죠."

    1969년 자동차공학도로 현대차 엔지니어로 입사해 차량 설계의 기본개념조차 없던 상태에서 국내 최초 고유모델 포니 개발에 참여했던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의 말이다.

    1976년 `마이카`라는 말을 만들며 화제가 됐던 포니 출시는 시발자동차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유모델 보유국으로 큰 문턱을 넘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당시 대리급이던 이 전 사장은 승용차 반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하던 70년대 5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이탈리아 이탈사로 파견됐다.

    복사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숨기는 핵심기술을 배우기 위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도면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 꼼꼼히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차량 한 대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 대리 노트`다.

    그는 한국이 자동차 변방국에서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시장을 위협하는 리더로 변신하기까지 30년 넘게 현장을 누볐다.
    신제품 개발의 산파 역할을 담당한 그의 손을 거친 차만도 엑셀, 쏘나타, 그랜저 등 33종에 이른다.

    은퇴한 후 2003년부터 국민대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현장 노하우 전수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2.18 08:19:00 입력  


    '한국 엔지니어 60인' 어떻게 선정했나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작업은 2006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진행됐다.
    후보 추천과 심사 기준은 산업발전 기여도와 기술발전 기여도 두 가지로 축약했다.

    구체적으로 산업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신산업 구축, 경제성장 기여, 수출 기여 등 엔지니어로서 산업현장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를 평가하는 산업발전 기여도에 중점을 뒀다.

    이 같은 선정 기준에 따라 먼저 서울대 공과대학이 지난 4월 교내외 전문가와 산업 계 전문가 등 18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위원장 최항순 서울대 교수)를 가동해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원과 산업자원부 산하 산업별 협회 회원사 등을 토대로 한 자 체 조사를 통해 예비 후보 1200여 명에 대한 자료를 검색사이트 인물검색 등을 통 해 수집했다.

    또 6월 30일 후보 공개모집을 시작으로 7월까지 후보를 추천받은 결과 협회 등 단 체에서 60여 명, 추천위원회 위원을 통해 90여 명, 명예교수 등 개인 추천으로 확 보한 20여 명을 포함해 모두 1470여 명을 확보했다.

    이어 9월 선우중호 명지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선정위원회 16명을 구성해 추 천위원회가 5개월 동안 작업을 통해 압축한 후보 122명을 대상으로 9월과 10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심사가 진행됐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0.22 17:45:02 입력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들이 공로를 인정받은 날."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이 열린 5일 서울대 엔지니어하우스 대강당에는 2시간 전부터 수상자와 그 가족, 이들을 축하하기 위한 각계 인사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시상식 시간인 오전 11시가 가까워오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김쌍수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수상자들이 속속 입장하면서 각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워졌다.

    이장무 총장은 이날 축사에서 "선정된 엔지니어들은 한국이 아시아 극도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시기에 산업을 구축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신화 창조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은 "대한민국이 오늘자로 연간 3000억달러를 수출하는 세계 열한 번째 무역대국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기술 영웅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말했다.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원장도 축사에서 "일제의 지배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온 세계가 놀랄 정도의 산업화를 이룩한 것은 이들 엔지니어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은 한국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과 애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LG전자를 세계 최고의 가전업체로 성장시킨 김쌍수 부회장은 "최근 이공계 출신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골고루 등용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이공계 분야 우수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올바른 대우를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기 진작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개척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이 83년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미국, 일본에 10년이나 기술이 뒤졌고 주위에서 반도체 투자는 `바위로 계란치기`라며 무모하다고 했다"면서 "몇 년간 고전하다가 87년 처음 흑자로 전환했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고 엔지니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다.

    설비설계 분야를 개척한 최상홍 한일MEC 회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지나치게 물질만능주의로 흘러 돈이 되지 않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도 이런 이공계 기피현상에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구태의연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이 말로만 애국을 부르짖는 것보다는 과학기술에 몸담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건축 시공의 선진화에 앞장선 장영수 전 대우건설 회장은 "엔지니어는 국가산업 발전의 기초"라며 "기초가 탄탄해야 발전 가속도가 붙는 만큼 엔지니어의 중요성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전 회장은 "이공계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대부분이 근시안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걱정스럽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의 엔지니어 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희국 LG전자 사장은 "한국 사회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데는 이공계 출신 인력들이 큰 힘을 보탰다"며 "이공계에 우수한 인재가 더욱 몰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우리 사회도 엔지니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흑자 전환의 주역인 오춘식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은 "중국 대만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최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 등의 성과로 인해 전체적으로 첨단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계가 고조되는 분위기"라면서도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이공계 우수인력 영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오 부사장은 "이공계에 대한 인기가 떨어져 국가적 집중력이 저하되는 측면이 있지만 국내에서도 1등 산업이 많이 만들어지면 이들 우수 인력에 대한 유인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경쟁력은 곧 산업종사자 수로 귀결되는 만큼 대만 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공학 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채탄기술 향상과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 김유선 전 강원탄광 사장은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하던 해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역에 대해 우주개발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 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장려 정책을 폈다"면서 이공계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또 고 김수근 선생이나 김중업 선생 등 이미 작고한 엔지니어를 대신해 시상식장에 참석한 이들은 그들의 업적이 화면에 비추며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 감격에 겨워 눈가를 훔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삼성과 LG, 현대 등 국내 3대 대기업 전ㆍ현직 최고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는 이색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 이희국 LG전자 사장과 자리를 함께해 근황을 묻고 서로를 격려했다.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한 인사는 "경제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원동력이 된 엔지니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이런 행사가 마련된 것은 상당히 뜻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전병득 기자 / 현경식 기자 / 박만원 기자 / 유용하 기자 / 이명진 기자 / 이은지 기자]

    출처 : 매일경제 2006.12.05 16:39:02 입력


    [나의 삶 나의 꿈] 젊은 싹 틔우는 거름이 되고 싶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째다.
    마이카 붐이 불기도 전인 1969년 자동차공학도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002년 사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필자가 아는 건 자동차가 전부였다.

    1976년 포니 출시를 시작으로 그간 필자의 손을 거쳐간 30여 종의 차는 모두 부족해서 못 팔 정도였으니 필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30년간 정든 현장을 떠나서도 대학원에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학생들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현장을 떠난 아쉬움도 잠시, 학생들과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을 알고 아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동차전문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인 만큼 자동차에 대해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도 제각각이다.

    어떤 친구는 엔진이나 플랫폼 등 자동차 공학에, 또 어떤 친구는 외관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다.

    포르쉐나 페라리를 몰아보고 싶어 한다거나 슈마허처럼 레이싱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 꿈인 친구도 있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늘 활기차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무엇이든 쉽게 정답을 구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면접을 대비한 모범답안은 없을까?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 전 불안을 달래기 위해 점검을 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또 7~8명의 학생들이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면접대비용 예상 질문서를 만들어 답변에 대한 과외수업(?)을 원하기 때문이다.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의 내 경험을 살린 답변을 원하는 것이다.

    또다른 질문도 많다.

    취업이 된다면 어느 직책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정년퇴직 전 몇 살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어느 부문에서 근무하는 것이 가장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지, 실로 그때 그때 다른,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젊은 그들이니 그만큼의 고민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내 젊은 시절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심도 많다.

    나는 20대와 30대 시절을 차량설계의 기본개념조차 없는 백지상태에서 첫 국산 고유브랜드인 포니 개발에 참여하는 `행운`을 안았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행운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는 와이퍼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곡면유리와 밀착되지 않는 데다 삐거덕거리기까지.

    대리시절 막내로 이탈리아 협력사로 파견돼 복사조차 못하게 하는 핵심기술을 넘겨듣고 차량설계부터 프로토타입까지 차 한 대를 개발할 수 있는 내용을 열심히 기록한 `이대리 노트`라고 불려지고 있는 보고서를 완성한 일은 20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Vision 2020`을 생각해 낸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새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적어내도록 나눠주는 과제이다.

    지금 학생들의 나이가 25세 전후이므로 2020년이 되면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40세가 된다.

    그때의 자화상을 그려보자는 취지다.

    중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때를 준비하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작성해 보자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목표를 알고 설정해 봄으로써 막연했던 꿈의 구체적 실현 방안을 세워보도록 하는 데 뜻이 있다.

    그 중에는 모자라는 어학실력을 채우기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하는가 하면, 기업에서 요구하는 `Multi-mix` 자격요건을 채우기 위해 과감하게 복수전공을 택하기도 한다.

    또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것이 엔지니어 차별화의 방법 중 하나라는 조언을 듣고 어릴 때 중단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친구도 있다.

    그럴 때는 내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생각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하고 조심스러워질 때도 많다.

    이렇듯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실천력 있는 친구들은 성공을 향해 한걸음씩 착실하게 나아가게 될 것으로 믿는다.

    자동차 설계도면도 읽을 줄 모를 정도의 자동차 변방국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나선 우리가 자동차강국이 된 것도 이 같은 착실한 걸음들이 모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우리가 짧은 기간에 선두 대열에 올라서기까지 세인들이 보기에 얼마나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도전했던가.

    운 좋게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잘 팔려나갔고 자동차 선진국 유럽에 수출 도전장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일도 떠오른다.

    미국시장에는 첫 해에 26만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는데(그것도 엑셀 한 차종으로) 그 후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왜 고전을 면치 못했는지,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들도 수출을 포기하는 그런 냉혹한 미국시장에서 (TV프로에서 형편없는 제품의 대명사처럼 비유되는 수모와 멸시를 당해가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재도전을 했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재기했는지 등등 젊은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는 나의 변명과 넋두리, 그리고 꿈이 뒤섞여 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가 자랄 때보다 나약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창 강인한 품성을 키워야할 때 입시지옥을 견뎌내야 하고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는 교육과정에 지쳐서일까. 저녁을 사달라고 지방에서 달려온 신입사원은 사회와 조직이라는 프로세계에서 느끼는 혼란과갈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래도 회사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려는 야심찬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사실 교수들은 학생들 개개인의 `욕구(Needs)`를 파악할 여유가 없다.

    할당된 학생 숫자가 너무 많고 전공과목에 열중해서 일방적이고 오래된 요지부동의 커리큘럼에 따라 지식전달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수요자인 기업과 공급자인 대학과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내던져진 학생들이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고 내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은 나의 젊음이 그랬듯이 배운다는 즐거움에 마냥 기뻐하고 열정으로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긴 입시터널을 빠져나온 그들의 끈기가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 젊은 싹을 틔우는 거름같은 삶을 살고 싶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2.09 08:28:01 입력

  • 제목 포니神話는 `李대리 노트`서 시작됐다 / 이충구(기계ㆍ자동차) 교수 작성자 조영문
    작성일 06.12.18 조회수 21010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 이충구(기계ㆍ자동차) 교수
  • 한국 엔지니어 60인' 어떻게 선정했나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
  • [나의 삶 나의 꿈] 젊은 싹 틔우는 거름이 되고 싶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포니(PONY)를 만들 때는 와이퍼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처음 하는 일이었죠."

    1969년 자동차공학도로 현대차 엔지니어로 입사해 차량 설계의 기본개념조차 없던 상태에서 국내 최초 고유모델 포니 개발에 참여했던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의 말이다.

    1976년 `마이카`라는 말을 만들며 화제가 됐던 포니 출시는 시발자동차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유모델 보유국으로 큰 문턱을 넘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당시 대리급이던 이 전 사장은 승용차 반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하던 70년대 5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이탈리아 이탈사로 파견됐다.

    복사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숨기는 핵심기술을 배우기 위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도면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 꼼꼼히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차량 한 대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 대리 노트`다.

    그는 한국이 자동차 변방국에서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시장을 위협하는 리더로 변신하기까지 30년 넘게 현장을 누볐다.
    신제품 개발의 산파 역할을 담당한 그의 손을 거친 차만도 엑셀, 쏘나타, 그랜저 등 33종에 이른다.

    은퇴한 후 2003년부터 국민대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현장 노하우 전수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2.18 08:19:00 입력  


    '한국 엔지니어 60인' 어떻게 선정했나 '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작업은 2006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진행됐다.
    후보 추천과 심사 기준은 산업발전 기여도와 기술발전 기여도 두 가지로 축약했다.

    구체적으로 산업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신산업 구축, 경제성장 기여, 수출 기여 등 엔지니어로서 산업현장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를 평가하는 산업발전 기여도에 중점을 뒀다.

    이 같은 선정 기준에 따라 먼저 서울대 공과대학이 지난 4월 교내외 전문가와 산업 계 전문가 등 18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위원장 최항순 서울대 교수)를 가동해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원과 산업자원부 산하 산업별 협회 회원사 등을 토대로 한 자 체 조사를 통해 예비 후보 1200여 명에 대한 자료를 검색사이트 인물검색 등을 통 해 수집했다.

    또 6월 30일 후보 공개모집을 시작으로 7월까지 후보를 추천받은 결과 협회 등 단 체에서 60여 명, 추천위원회 위원을 통해 90여 명, 명예교수 등 개인 추천으로 확 보한 20여 명을 포함해 모두 1470여 명을 확보했다.

    이어 9월 선우중호 명지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선정위원회 16명을 구성해 추 천위원회가 5개월 동안 작업을 통해 압축한 후보 122명을 대상으로 9월과 10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심사가 진행됐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0.22 17:45:02 입력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들이 공로를 인정받은 날."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시상식이 열린 5일 서울대 엔지니어하우스 대강당에는 2시간 전부터 수상자와 그 가족, 이들을 축하하기 위한 각계 인사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시상식 시간인 오전 11시가 가까워오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김쌍수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수상자들이 속속 입장하면서 각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워졌다.

    이장무 총장은 이날 축사에서 "선정된 엔지니어들은 한국이 아시아 극도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시기에 산업을 구축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신화 창조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은 "대한민국이 오늘자로 연간 3000억달러를 수출하는 세계 열한 번째 무역대국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기술 영웅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말했다.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원장도 축사에서 "일제의 지배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온 세계가 놀랄 정도의 산업화를 이룩한 것은 이들 엔지니어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은 한국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과 애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LG전자를 세계 최고의 가전업체로 성장시킨 김쌍수 부회장은 "최근 이공계 출신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골고루 등용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이공계 분야 우수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올바른 대우를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기 진작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개척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이 83년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미국, 일본에 10년이나 기술이 뒤졌고 주위에서 반도체 투자는 `바위로 계란치기`라며 무모하다고 했다"면서 "몇 년간 고전하다가 87년 처음 흑자로 전환했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고 엔지니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다.

    설비설계 분야를 개척한 최상홍 한일MEC 회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지나치게 물질만능주의로 흘러 돈이 되지 않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도 이런 이공계 기피현상에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구태의연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이 말로만 애국을 부르짖는 것보다는 과학기술에 몸담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건축 시공의 선진화에 앞장선 장영수 전 대우건설 회장은 "엔지니어는 국가산업 발전의 기초"라며 "기초가 탄탄해야 발전 가속도가 붙는 만큼 엔지니어의 중요성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전 회장은 "이공계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대부분이 근시안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걱정스럽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의 엔지니어 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희국 LG전자 사장은 "한국 사회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데는 이공계 출신 인력들이 큰 힘을 보탰다"며 "이공계에 우수한 인재가 더욱 몰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우리 사회도 엔지니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흑자 전환의 주역인 오춘식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은 "중국 대만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최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 등의 성과로 인해 전체적으로 첨단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계가 고조되는 분위기"라면서도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이공계 우수인력 영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오 부사장은 "이공계에 대한 인기가 떨어져 국가적 집중력이 저하되는 측면이 있지만 국내에서도 1등 산업이 많이 만들어지면 이들 우수 인력에 대한 유인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경쟁력은 곧 산업종사자 수로 귀결되는 만큼 대만 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공학 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채탄기술 향상과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 김유선 전 강원탄광 사장은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하던 해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역에 대해 우주개발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 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장려 정책을 폈다"면서 이공계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또 고 김수근 선생이나 김중업 선생 등 이미 작고한 엔지니어를 대신해 시상식장에 참석한 이들은 그들의 업적이 화면에 비추며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 감격에 겨워 눈가를 훔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삼성과 LG, 현대 등 국내 3대 대기업 전ㆍ현직 최고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는 이색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 이희국 LG전자 사장과 자리를 함께해 근황을 묻고 서로를 격려했다.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한 인사는 "경제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원동력이 된 엔지니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이런 행사가 마련된 것은 상당히 뜻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전병득 기자 / 현경식 기자 / 박만원 기자 / 유용하 기자 / 이명진 기자 / 이은지 기자]

    출처 : 매일경제 2006.12.05 16:39:02 입력


    [나의 삶 나의 꿈] 젊은 싹 틔우는 거름이 되고 싶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째다.
    마이카 붐이 불기도 전인 1969년 자동차공학도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002년 사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필자가 아는 건 자동차가 전부였다.

    1976년 포니 출시를 시작으로 그간 필자의 손을 거쳐간 30여 종의 차는 모두 부족해서 못 팔 정도였으니 필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30년간 정든 현장을 떠나서도 대학원에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학생들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현장을 떠난 아쉬움도 잠시, 학생들과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을 알고 아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동차전문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인 만큼 자동차에 대해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도 제각각이다.

    어떤 친구는 엔진이나 플랫폼 등 자동차 공학에, 또 어떤 친구는 외관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다.

    포르쉐나 페라리를 몰아보고 싶어 한다거나 슈마허처럼 레이싱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 꿈인 친구도 있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늘 활기차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무엇이든 쉽게 정답을 구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면접을 대비한 모범답안은 없을까?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 전 불안을 달래기 위해 점검을 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또 7~8명의 학생들이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면접대비용 예상 질문서를 만들어 답변에 대한 과외수업(?)을 원하기 때문이다.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의 내 경험을 살린 답변을 원하는 것이다.

    또다른 질문도 많다.

    취업이 된다면 어느 직책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정년퇴직 전 몇 살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어느 부문에서 근무하는 것이 가장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지, 실로 그때 그때 다른,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젊은 그들이니 그만큼의 고민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내 젊은 시절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심도 많다.

    나는 20대와 30대 시절을 차량설계의 기본개념조차 없는 백지상태에서 첫 국산 고유브랜드인 포니 개발에 참여하는 `행운`을 안았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행운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는 와이퍼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곡면유리와 밀착되지 않는 데다 삐거덕거리기까지.

    대리시절 막내로 이탈리아 협력사로 파견돼 복사조차 못하게 하는 핵심기술을 넘겨듣고 차량설계부터 프로토타입까지 차 한 대를 개발할 수 있는 내용을 열심히 기록한 `이대리 노트`라고 불려지고 있는 보고서를 완성한 일은 20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Vision 2020`을 생각해 낸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새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적어내도록 나눠주는 과제이다.

    지금 학생들의 나이가 25세 전후이므로 2020년이 되면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40세가 된다.

    그때의 자화상을 그려보자는 취지다.

    중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때를 준비하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작성해 보자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목표를 알고 설정해 봄으로써 막연했던 꿈의 구체적 실현 방안을 세워보도록 하는 데 뜻이 있다.

    그 중에는 모자라는 어학실력을 채우기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하는가 하면, 기업에서 요구하는 `Multi-mix` 자격요건을 채우기 위해 과감하게 복수전공을 택하기도 한다.

    또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것이 엔지니어 차별화의 방법 중 하나라는 조언을 듣고 어릴 때 중단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친구도 있다.

    그럴 때는 내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생각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하고 조심스러워질 때도 많다.

    이렇듯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실천력 있는 친구들은 성공을 향해 한걸음씩 착실하게 나아가게 될 것으로 믿는다.

    자동차 설계도면도 읽을 줄 모를 정도의 자동차 변방국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나선 우리가 자동차강국이 된 것도 이 같은 착실한 걸음들이 모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우리가 짧은 기간에 선두 대열에 올라서기까지 세인들이 보기에 얼마나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도전했던가.

    운 좋게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잘 팔려나갔고 자동차 선진국 유럽에 수출 도전장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일도 떠오른다.

    미국시장에는 첫 해에 26만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는데(그것도 엑셀 한 차종으로) 그 후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왜 고전을 면치 못했는지,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들도 수출을 포기하는 그런 냉혹한 미국시장에서 (TV프로에서 형편없는 제품의 대명사처럼 비유되는 수모와 멸시를 당해가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재도전을 했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재기했는지 등등 젊은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는 나의 변명과 넋두리, 그리고 꿈이 뒤섞여 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가 자랄 때보다 나약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창 강인한 품성을 키워야할 때 입시지옥을 견뎌내야 하고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는 교육과정에 지쳐서일까. 저녁을 사달라고 지방에서 달려온 신입사원은 사회와 조직이라는 프로세계에서 느끼는 혼란과갈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래도 회사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려는 야심찬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사실 교수들은 학생들 개개인의 `욕구(Needs)`를 파악할 여유가 없다.

    할당된 학생 숫자가 너무 많고 전공과목에 열중해서 일방적이고 오래된 요지부동의 커리큘럼에 따라 지식전달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수요자인 기업과 공급자인 대학과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내던져진 학생들이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고 내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은 나의 젊음이 그랬듯이 배운다는 즐거움에 마냥 기뻐하고 열정으로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긴 입시터널을 빠져나온 그들의 끈기가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 젊은 싹을 틔우는 거름같은 삶을 살고 싶다.

    출처 : 매일경제 2006.12.09 08:28:0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