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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 손석희 교수 “공격적 질문은 더 많은 정보 전달위한 수단” / (국문 76) 동문

  • 07.01.09 / 조영문
최근 MBC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아침 6~8시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의 절반가량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다이얼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60%에서 최저 40%대를 오가는 청취율이다. 결국 6년이 넘은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한 시사주간지가 200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영향력·신뢰도 1위의 언론인’으로 선정했던 ‘방송인 손석희’의 기반인 셈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성공 포인트인 ‘공격적 인터뷰어 손석희’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철저한 준비, 상대가 도망갈 수 없게 붙들어매는 날카로운 순발력’이라는 평가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싸움닭 같은 인터뷰’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11개월 전 MBC에서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로 직장을 옮긴 ‘프리랜서 방송인’ 손석희 교수(51)를, 갑자기 폭설이 쏟아졌던 지난 토요일 아침에 만났다.


손교수는 일견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자신의 질문 스타일에 대해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문제 제기형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고, 대통령 선거를 10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잘 하면 본전, 자칫하면 낭떠러지’인 시사진행자의 고충과 긴장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지난 20여년간 ‘말’을 업으로 살아온 이 ‘화술’(話術) 전문가는, 최근 잇따라 도마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시선집중’의 메인 인터뷰는 때때로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듣다보면 마음이 불편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적잖은 분들이 그렇게 느낍니다. 청취자들한테 혼날 때도 있어요. ‘너무 몰아친다, 위압적이다’라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인터뷰는 부득이하게 그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실 ‘시선집중’ 방식은 MBC 시사저널리즘의 방향전환과도 관계가 있죠. 그 전까진 문제를 뒤로 돌려서 다루다가, 정곡을 찌르기 시작한 첫 케이스였거든요. 가능하면 당사자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방식에서도 이른바 문제 제기형 인터뷰를 시도했던 거죠.”

-그 방식 속엔 청취자를 의식한, ‘일종의 의도’ 같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선정성으로 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늘 고민합니다. 왜 정치인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정치란 것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 말입니다. 방송을 하면서 공익성과 상업성 사이에 놓인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자칫하면 대중추수적이고 선정적인 측면으로 떨어질 수 있죠. 늘 반성하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고민합니다.”

-반성이오.

“물론이죠. 혹시 내가 지나치지 않았는지, 자만에 빠진 건 아닌지 돌아보곤 해요. 어떤 때는 저희 제작진 쪽에서 그렇게 몰아붙이면 다음부터 그 사람을 섭외하기 힘들다면서 중화(中和)를 요청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저희 입장이지요. 청취자들한테 ‘인터뷰 대상자가 다음부터 안 나올지 모르니까,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할 순 없거든요. 사실은 저도 (공격적 인터뷰를) 절대 즐기는 게 아니거든요. 제 자신도 힘들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부터 스트레스받고, 텅 빈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외롭거든요. 하지만 청취자가 듣고 있는데… 밀릴 수 없잖아요.”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인터뷰를 하시나요.

“매스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거나 통합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계몽적 역할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사회가 지극히 분화됐고 전통적 가치관도 많이 사라졌지요. ‘왜 인터뷰 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정보를 위해서 한다’고 답하고 싶어요. 그래서 실체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젠 언론이 대중을 선도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청취자나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측면이 커졌다고 봐요.”

-처음에 한 일간지에 취직했다가 몇 달 안돼 그만두고,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MBC에서도 80년대 후반에 보도국 기자 생활을 잠시 하셨습니다. 왜 방송으로 갔는지, 또 보도국에서 아나운서실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문사에 기자가 아닌 업무직으로 취직했었죠. 적응을 못했어요. 6개월 만에 그만뒀죠. 84년에 MBC에 입사해서 87년 4월에 보도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요, 회사의 인사였던 거죠. 보도국 기자생활을 2년6개월 동안 했습니다.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서울시청 출입하면서 수도권 뉴스 리포터로 일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요. 애초에 보도국으로 흔쾌히 갔던 것도 아니었고요. 보도국에서 아나운서실로 되돌아온 건 제가 처음일 겁니다.”

-88년에 MBC 노조가 사장 퇴진, 공정방송 쟁취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첫 파업을 했었지요.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데다 모범생 같은 외모의 손석희 앵커가 검정리본을 달고 뉴스를 진행하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그것이 이후 ‘방송인 손석희’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규정해버린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 그때 전 그냥 일반 조합원이었어요. 9시 ‘뉴스데스크’의 주말앵커를 맡고 있었는데, 주중에는 돌아가신 이득렬씨가 뉴스를 진행했죠. 이득렬씨는 조합원이 아니었지만, 전 조합원이라서 검정리본을 달아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쪽에선 리본 달면 출연 못시킨다고 했어요. 노사 모두가 ‘과연 이 친구가 리본을 달까’하는 관심이 컸지요. 개인적 압박감도 정말 컸습니다. 토요일 밤에 잠도 못자고 뒤척이다 결국 일요일 방송에서 달았지요. 그것 때문에 외부의 관심이 갑자기 커졌어요.(웃음)”

-한 시사주간지가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손교수가 영향력과 신뢰도 1위의 언론인으로 2년간 계속 꼽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평가한다거나 소감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 설문조사 중에 ‘신뢰하는 언론매체’를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역으로 손교수에게 던진다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신뢰도의 기준이 뭔지가 좀 애매한 것 같습니다. 그게 과연 ‘균형’과 ‘중립’인지는 미디어 종사자나 학자들 모두에게 여전히 논란거리인 것 같고요.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음… 제가 어느 한 매체를 딱 집어서 말하긴 곤란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에 비해 정치권력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분명 사실이고, 그렇다면 이젠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언론이야말로 콘텐츠가 덜 선정적이고, 자본이 갖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죠.”

-대통령 선거가 11개월 후로 다가왔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다시 맞았는데요, 예전에도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손교수 영입설이 흘러나오곤 했죠.

“예. 2000년 총선 때가 제일 심했어요. 양쪽에서 다 그랬으니까요. 그건 그 사람들의 마케팅 전술이었겠지요. 하지만 제 체질엔 전혀 안 맞아요. 정치권으로 가는 걸 일종의 ‘업 그레이드’로 생각하는 우리 세태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젠 큰일 해야지’라는 식으로 얘기하시더군요. 그게 바로 아직 민주주의가 안되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청취자·시청자들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방송에서도 얘기했어요. ‘저는 안합니다’라고요. 그리고 ‘이 말을 절대 뒤집지 않을 것’이라고 자물쇠까지 채웠죠. 방송하고 학교에서 강의하는 게 저한테 어울립니다.”

-최근 노대통령의 ‘말’이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손교수께서는 20년 넘게 방송일을 해왔고 대학에서도 ‘방송화술’을 강의하지 않습니까. 노대통령의 ‘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거 힘든 질문이네요. (웃음) 음… 노대통령이 50을 잘못하고도 100을 잘못한 것처럼 평가받는 게 바로 그 어법 탓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차기 대통령은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소통에 능한 분이 필요한 것 같고요. 저도 사실은 대선 국면을 앞두고 많이 긴장하고 있어요. 지난 대선 때는 ‘시선집중’이 초창기였고, ‘100분 토론’을 막 맡았을 때였죠. 그땐 준비 안된 상태에서 진행했는데 이젠 좀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깜빡 실수가 크게 불거질 수도 있지요. 첨예한 이해가 부딪히는 상황에서 자칫 편파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요. 무척 조심스럽지만, 해야 할 일은 할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정보를 주는 거죠.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죠.”

〈글 문학수·사진 박재찬기자 sachimo@kyunghyang.com〉

◇손석희는 누구

1956년생. 82년 국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9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마쳤다. 84년 MBC에 입사해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활동했으며 아나운서 국장을 거치고 2006년 퇴직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한국 아나운서 대상,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상을 받았고, 2006년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1위로 뽑혔다. 현재 MBC 표준FM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MBC TV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입력: 2007년 01월 08일 17:57:51 ]
제목 [경향과의 만남] 손석희 교수 “공격적 질문은 더 많은 정보 전달위한 수단” / (국문 76) 동문 작성자 조영문
작성일 07.01.09 조회수 18738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최근 MBC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아침 6~8시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의 절반가량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다이얼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60%에서 최저 40%대를 오가는 청취율이다. 결국 6년이 넘은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한 시사주간지가 200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영향력·신뢰도 1위의 언론인’으로 선정했던 ‘방송인 손석희’의 기반인 셈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성공 포인트인 ‘공격적 인터뷰어 손석희’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철저한 준비, 상대가 도망갈 수 없게 붙들어매는 날카로운 순발력’이라는 평가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싸움닭 같은 인터뷰’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11개월 전 MBC에서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로 직장을 옮긴 ‘프리랜서 방송인’ 손석희 교수(51)를, 갑자기 폭설이 쏟아졌던 지난 토요일 아침에 만났다.


손교수는 일견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자신의 질문 스타일에 대해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문제 제기형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고, 대통령 선거를 10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잘 하면 본전, 자칫하면 낭떠러지’인 시사진행자의 고충과 긴장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지난 20여년간 ‘말’을 업으로 살아온 이 ‘화술’(話術) 전문가는, 최근 잇따라 도마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시선집중’의 메인 인터뷰는 때때로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듣다보면 마음이 불편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적잖은 분들이 그렇게 느낍니다. 청취자들한테 혼날 때도 있어요. ‘너무 몰아친다, 위압적이다’라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인터뷰는 부득이하게 그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실 ‘시선집중’ 방식은 MBC 시사저널리즘의 방향전환과도 관계가 있죠. 그 전까진 문제를 뒤로 돌려서 다루다가, 정곡을 찌르기 시작한 첫 케이스였거든요. 가능하면 당사자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방식에서도 이른바 문제 제기형 인터뷰를 시도했던 거죠.”

-그 방식 속엔 청취자를 의식한, ‘일종의 의도’ 같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선정성으로 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늘 고민합니다. 왜 정치인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정치란 것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 말입니다. 방송을 하면서 공익성과 상업성 사이에 놓인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자칫하면 대중추수적이고 선정적인 측면으로 떨어질 수 있죠. 늘 반성하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고민합니다.”

-반성이오.

“물론이죠. 혹시 내가 지나치지 않았는지, 자만에 빠진 건 아닌지 돌아보곤 해요. 어떤 때는 저희 제작진 쪽에서 그렇게 몰아붙이면 다음부터 그 사람을 섭외하기 힘들다면서 중화(中和)를 요청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저희 입장이지요. 청취자들한테 ‘인터뷰 대상자가 다음부터 안 나올지 모르니까,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할 순 없거든요. 사실은 저도 (공격적 인터뷰를) 절대 즐기는 게 아니거든요. 제 자신도 힘들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부터 스트레스받고, 텅 빈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외롭거든요. 하지만 청취자가 듣고 있는데… 밀릴 수 없잖아요.”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인터뷰를 하시나요.

“매스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거나 통합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계몽적 역할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사회가 지극히 분화됐고 전통적 가치관도 많이 사라졌지요. ‘왜 인터뷰 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정보를 위해서 한다’고 답하고 싶어요. 그래서 실체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젠 언론이 대중을 선도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청취자나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측면이 커졌다고 봐요.”

-처음에 한 일간지에 취직했다가 몇 달 안돼 그만두고,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MBC에서도 80년대 후반에 보도국 기자 생활을 잠시 하셨습니다. 왜 방송으로 갔는지, 또 보도국에서 아나운서실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문사에 기자가 아닌 업무직으로 취직했었죠. 적응을 못했어요. 6개월 만에 그만뒀죠. 84년에 MBC에 입사해서 87년 4월에 보도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요, 회사의 인사였던 거죠. 보도국 기자생활을 2년6개월 동안 했습니다.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서울시청 출입하면서 수도권 뉴스 리포터로 일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요. 애초에 보도국으로 흔쾌히 갔던 것도 아니었고요. 보도국에서 아나운서실로 되돌아온 건 제가 처음일 겁니다.”

-88년에 MBC 노조가 사장 퇴진, 공정방송 쟁취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첫 파업을 했었지요.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데다 모범생 같은 외모의 손석희 앵커가 검정리본을 달고 뉴스를 진행하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그것이 이후 ‘방송인 손석희’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규정해버린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 그때 전 그냥 일반 조합원이었어요. 9시 ‘뉴스데스크’의 주말앵커를 맡고 있었는데, 주중에는 돌아가신 이득렬씨가 뉴스를 진행했죠. 이득렬씨는 조합원이 아니었지만, 전 조합원이라서 검정리본을 달아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쪽에선 리본 달면 출연 못시킨다고 했어요. 노사 모두가 ‘과연 이 친구가 리본을 달까’하는 관심이 컸지요. 개인적 압박감도 정말 컸습니다. 토요일 밤에 잠도 못자고 뒤척이다 결국 일요일 방송에서 달았지요. 그것 때문에 외부의 관심이 갑자기 커졌어요.(웃음)”

-한 시사주간지가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손교수가 영향력과 신뢰도 1위의 언론인으로 2년간 계속 꼽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평가한다거나 소감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 설문조사 중에 ‘신뢰하는 언론매체’를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역으로 손교수에게 던진다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신뢰도의 기준이 뭔지가 좀 애매한 것 같습니다. 그게 과연 ‘균형’과 ‘중립’인지는 미디어 종사자나 학자들 모두에게 여전히 논란거리인 것 같고요.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음… 제가 어느 한 매체를 딱 집어서 말하긴 곤란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에 비해 정치권력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분명 사실이고, 그렇다면 이젠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언론이야말로 콘텐츠가 덜 선정적이고, 자본이 갖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죠.”

-대통령 선거가 11개월 후로 다가왔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다시 맞았는데요, 예전에도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손교수 영입설이 흘러나오곤 했죠.

“예. 2000년 총선 때가 제일 심했어요. 양쪽에서 다 그랬으니까요. 그건 그 사람들의 마케팅 전술이었겠지요. 하지만 제 체질엔 전혀 안 맞아요. 정치권으로 가는 걸 일종의 ‘업 그레이드’로 생각하는 우리 세태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젠 큰일 해야지’라는 식으로 얘기하시더군요. 그게 바로 아직 민주주의가 안되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청취자·시청자들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방송에서도 얘기했어요. ‘저는 안합니다’라고요. 그리고 ‘이 말을 절대 뒤집지 않을 것’이라고 자물쇠까지 채웠죠. 방송하고 학교에서 강의하는 게 저한테 어울립니다.”

-최근 노대통령의 ‘말’이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손교수께서는 20년 넘게 방송일을 해왔고 대학에서도 ‘방송화술’을 강의하지 않습니까. 노대통령의 ‘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거 힘든 질문이네요. (웃음) 음… 노대통령이 50을 잘못하고도 100을 잘못한 것처럼 평가받는 게 바로 그 어법 탓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차기 대통령은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소통에 능한 분이 필요한 것 같고요. 저도 사실은 대선 국면을 앞두고 많이 긴장하고 있어요. 지난 대선 때는 ‘시선집중’이 초창기였고, ‘100분 토론’을 막 맡았을 때였죠. 그땐 준비 안된 상태에서 진행했는데 이젠 좀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깜빡 실수가 크게 불거질 수도 있지요. 첨예한 이해가 부딪히는 상황에서 자칫 편파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요. 무척 조심스럽지만, 해야 할 일은 할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정보를 주는 거죠.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죠.”

〈글 문학수·사진 박재찬기자 sachimo@kyunghyang.com〉

◇손석희는 누구

1956년생. 82년 국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9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마쳤다. 84년 MBC에 입사해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활동했으며 아나운서 국장을 거치고 2006년 퇴직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한국 아나운서 대상,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상을 받았고, 2006년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1위로 뽑혔다. 현재 MBC 표준FM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MBC TV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입력: 2007년 01월 08일 17:5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