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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칼럼]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무슨 명분이 있냐고? / 이호선(법학부) 교수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도둑정치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내는 일만큼 명분이 당당한 것이 또 있을까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사퇴한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한 청와대와 여권의 반응이 선불 맞은 멧돼지 같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의 때와는 달리 최 원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토를 달았다. 언론들은 이를 받아서 대통령이 ‘질책’을 하였다고 제목을 달기도 하였다. 이제는 ‘개도 못 줄 제 버릇’으로 아예 굳어진 정권의 ‘내로남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감사위원이던 김진국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차출해갔던 그 기억은 대통령의 머리 속에서 까맣게 사라진 것일까.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하여 7명의 감사위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제 기관이다. 대통령 말마따나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하다면 그 무게는 감사원장이나 감사위원이나 차이가 없다. 어제까지 감사위원 하던 사람을 자기 비서로 데리고 간 대통령이 사돈 남 말 하듯 감사원장에게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는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런데 정말 감사원에게 필요한 것이 정치적 중립성일까? 세계최고감사기구협의회(INTOSAI)에서 채택한 ‘감사수칙 지침에 관한 1997년 리마선언(The Lima Declaration of Guidelines on Auditing Precepts)’이라는 것이 있다. 유엔이 2014. 12. 19. 제69차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위 선언문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정도로 위 선언은 감사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글로벌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선언문에 중립이란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심지어 공정, 형평, 불편부당과 같이 정치적 중립 비슷한 단어도 없다. 여기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독립성’이다.
 

감사원이 감사원답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핵심은 독립성이 보장되느냐에 달려 있다. 최 전 원장의 사퇴나 정치참여에 명분이 없다는 주장의 논거는 ‘정치적 중립성 위반’ 프레임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이는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것은 감사원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중립이란 어느 양 쪽을 놓고 그 중간에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감사원에게 양 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당도, 야당도 그 대상이 되는 수사기관의 활동과 달리, 감사대상을 공공행정으로 한정하고 있는 감사원의 눈과 팔은 오로지 정부를 향하여 있다.
  

정권을 상대로 하는 자기사정기관에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감사란 없다. 불편하고, 찜찜하고, 귀찮고, 나중에 불이익한 뭐라도 나오면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감사이다. 그렇게 따지면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감사가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것이 세상사임을 알기에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통해 국민 세금을 걷어서 쓰는 정권이 제대로 돈을 쓰는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 효율성이 보장이 되는지 들여다보도록 하고 있고, 이것이 감사의 본질인 것이다.
 

이런 감사에 대하여 말이 좋아 감사이지 정권이 작심하고 깔아뭉개기 시작하면 수사권이 없는 감사제도란 사실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이 권력의 생리를 잘 꿰뚫고 알아서 긴 사람이 ‘신 내림’ 공무원이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최재형 감사원장이 2020. 10. 15. 월성 원전 1호기 감사와 관련하여 국회법사위에서 “감사원장이 되고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말도 안했다. 사실을 감추고 허위자료를 냈다”고 발언했을까. 최재형 전 원장을 공격하기에 바쁜 청와대와 여권은 엉뚱한 프레임과 말장난으로 흠집 내 볼까 하는 꼼수 대신 정말 최 전 원장이 문제 있다면 이 국회 속기록 발언을 근거로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말할 때 보통 법적 독립성, 인적 독립성, 기능적 독립성, 재정적 독립성을 드는데, 이 중에서도 기능적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감사원의 존립과 역할을 위태롭게 한 것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이다. 현직 감사위원을 자기 ‘꼬붕’으로  데리고 간 대통령, 발탁해 준다고 쫄랑쫄랑 따라간 감사위원, 이들이 과연 대통령과 민정수석이라는 공식적인 상하 관계로 커밍 아웃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 사이에 위 네 가지 독립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적 독립성을 해하는 상호 교감과 지시, 청탁, 주문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정권 들어와서 임명한 감사위원들 중에서 조국, 추미애, 박범계, 이용구, 김오수 류(類)인 인사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최재형 전 원장은 이미 1년 전부터 여당의 노골적인 감사원 흔들기에 외롭게 서서 맞서 왔다. 2020. 7. 29. 국회 법사위에서는 지금은 법무부 장관이 된 박범계 의원과 신동근, 소병철 등 민주당 의원이 세 시간여 가량 감사원장을 앉혀 놓고 월성 원전 감사를 놓고 흔들어댔다. 신동근 의원은 감사원장을 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내부적으로도 친 정권 성향의 감사위원들의 노골적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권 하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정권에게 감사원의 독립성은 처음부터 아예 그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검찰개혁을 빌미로 정권에 불리한 모든 수사를 막기 위해 권력이 총동원되어 광분하고 있는 지금의 사태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감사원 정도의 준사정기관은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판사 출신인 최재형 원장을 한껏 추켜세우면서 감사원장으로 임명할 때 이미 그 속내에는 ‘때리는 시늉만 하는 감사원’을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서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여권이 보이는 필요 이상의 신경질적인 반응 속에 묻어나는 당혹함이 이를 반증한다. “중립”이라 쓰고 “내 편”으로 읽는 자들 입장에서, 꽃을 들고 와 때릴 줄 알았는데, 작두를 들고 온 판관 포청천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겁했을까. 이 정권 하에서의 감사원의 독립, 국민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는 최재형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개인적으로는 일 년 동안 버텨온 맷집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아주 짧게 발표한 사퇴의 변에서 감사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되는 마당에 계속 감사원장직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정치적 중립성은 국민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 그간 최재형 감사원장 아래에서의 감사원이 해 왔던 감사 직무가 정치적으로 오염되고, 오해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여권이 그를 공격하는 용어로서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다른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 참여와 대권 도전을 선언할 것인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지대하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명분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온갖 언론을 통해서 퍼붓는 저주와 악담은 놔두고라도, 감사위원을 비서로 뽑아가는 대통령,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의 무도함에 그만큼 버텼으면 충분하다. 그가 정치 참여를 할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여당은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그를 향해 연일 십자포화를 쏘아대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인 윤호중 같은 사람은 그를 ‘탈영병’으로 표현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586 운동권이 언제부터 대한민국 군대를 신성시하여 탈영을 범죄로 인식하였는지, 하여튼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쨌건 어떻게든 나쁜 낙인을 찍어 보려는 가상한 노력은 알겠으나, 탈영은 정상적인 군대 조직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 정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 진단하고 정의하였듯이 소수가 정치적 이권을 갖고 돈과 특혜를 나눠먹는 패거리 권력집단을 핵으로 한다. 이런 정치체제를 일컫는 용어가 있다. “도둑정치(Kleptocracy, Thievocracy)”가 그 것이다.  윤 의원의 말은 권력 사유화의 망을 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나간 배신감의 토로로 들린다.
 

감사원은 그 직무의 특성상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국가 정책 운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두루두루 살펴보는 기관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이런 입체적 조망 속에서 패거리로 권력을 사유화하여 이권과 돈을 나눠먹는 부패한 흐름을 보지 못 했을 리 없다. 최 전 감사원장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다면 그것은 탈영한 것이 아니라, 마적떼의 본질을 보고 박차고 나와 토벌대장이 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Democracy)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도둑정치(Kleptocracy)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내는 일만큼 대의와 명분이 당당한 것이 또 있을까.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제목 [이호선 칼럼]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무슨 명분이 있냐고? / 이호선(법학부) 교수 작성자 박윤진
작성일 21.07.07 조회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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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도둑정치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내는 일만큼 명분이 당당한 것이 또 있을까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사퇴한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한 청와대와 여권의 반응이 선불 맞은 멧돼지 같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의 때와는 달리 최 원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토를 달았다. 언론들은 이를 받아서 대통령이 ‘질책’을 하였다고 제목을 달기도 하였다. 이제는 ‘개도 못 줄 제 버릇’으로 아예 굳어진 정권의 ‘내로남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감사위원이던 김진국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차출해갔던 그 기억은 대통령의 머리 속에서 까맣게 사라진 것일까.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하여 7명의 감사위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제 기관이다. 대통령 말마따나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하다면 그 무게는 감사원장이나 감사위원이나 차이가 없다. 어제까지 감사위원 하던 사람을 자기 비서로 데리고 간 대통령이 사돈 남 말 하듯 감사원장에게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는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런데 정말 감사원에게 필요한 것이 정치적 중립성일까? 세계최고감사기구협의회(INTOSAI)에서 채택한 ‘감사수칙 지침에 관한 1997년 리마선언(The Lima Declaration of Guidelines on Auditing Precepts)’이라는 것이 있다. 유엔이 2014. 12. 19. 제69차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위 선언문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정도로 위 선언은 감사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글로벌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선언문에 중립이란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심지어 공정, 형평, 불편부당과 같이 정치적 중립 비슷한 단어도 없다. 여기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독립성’이다.
 

감사원이 감사원답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핵심은 독립성이 보장되느냐에 달려 있다. 최 전 원장의 사퇴나 정치참여에 명분이 없다는 주장의 논거는 ‘정치적 중립성 위반’ 프레임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이는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것은 감사원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중립이란 어느 양 쪽을 놓고 그 중간에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감사원에게 양 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당도, 야당도 그 대상이 되는 수사기관의 활동과 달리, 감사대상을 공공행정으로 한정하고 있는 감사원의 눈과 팔은 오로지 정부를 향하여 있다.
  

정권을 상대로 하는 자기사정기관에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감사란 없다. 불편하고, 찜찜하고, 귀찮고, 나중에 불이익한 뭐라도 나오면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감사이다. 그렇게 따지면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감사가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것이 세상사임을 알기에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통해 국민 세금을 걷어서 쓰는 정권이 제대로 돈을 쓰는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 효율성이 보장이 되는지 들여다보도록 하고 있고, 이것이 감사의 본질인 것이다.
 

이런 감사에 대하여 말이 좋아 감사이지 정권이 작심하고 깔아뭉개기 시작하면 수사권이 없는 감사제도란 사실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이 권력의 생리를 잘 꿰뚫고 알아서 긴 사람이 ‘신 내림’ 공무원이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최재형 감사원장이 2020. 10. 15. 월성 원전 1호기 감사와 관련하여 국회법사위에서 “감사원장이 되고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말도 안했다. 사실을 감추고 허위자료를 냈다”고 발언했을까. 최재형 전 원장을 공격하기에 바쁜 청와대와 여권은 엉뚱한 프레임과 말장난으로 흠집 내 볼까 하는 꼼수 대신 정말 최 전 원장이 문제 있다면 이 국회 속기록 발언을 근거로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말할 때 보통 법적 독립성, 인적 독립성, 기능적 독립성, 재정적 독립성을 드는데, 이 중에서도 기능적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감사원의 존립과 역할을 위태롭게 한 것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이다. 현직 감사위원을 자기 ‘꼬붕’으로  데리고 간 대통령, 발탁해 준다고 쫄랑쫄랑 따라간 감사위원, 이들이 과연 대통령과 민정수석이라는 공식적인 상하 관계로 커밍 아웃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 사이에 위 네 가지 독립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적 독립성을 해하는 상호 교감과 지시, 청탁, 주문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정권 들어와서 임명한 감사위원들 중에서 조국, 추미애, 박범계, 이용구, 김오수 류(類)인 인사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최재형 전 원장은 이미 1년 전부터 여당의 노골적인 감사원 흔들기에 외롭게 서서 맞서 왔다. 2020. 7. 29. 국회 법사위에서는 지금은 법무부 장관이 된 박범계 의원과 신동근, 소병철 등 민주당 의원이 세 시간여 가량 감사원장을 앉혀 놓고 월성 원전 감사를 놓고 흔들어댔다. 신동근 의원은 감사원장을 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내부적으로도 친 정권 성향의 감사위원들의 노골적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권 하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정권에게 감사원의 독립성은 처음부터 아예 그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검찰개혁을 빌미로 정권에 불리한 모든 수사를 막기 위해 권력이 총동원되어 광분하고 있는 지금의 사태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감사원 정도의 준사정기관은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판사 출신인 최재형 원장을 한껏 추켜세우면서 감사원장으로 임명할 때 이미 그 속내에는 ‘때리는 시늉만 하는 감사원’을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서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여권이 보이는 필요 이상의 신경질적인 반응 속에 묻어나는 당혹함이 이를 반증한다. “중립”이라 쓰고 “내 편”으로 읽는 자들 입장에서, 꽃을 들고 와 때릴 줄 알았는데, 작두를 들고 온 판관 포청천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겁했을까. 이 정권 하에서의 감사원의 독립, 국민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는 최재형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개인적으로는 일 년 동안 버텨온 맷집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아주 짧게 발표한 사퇴의 변에서 감사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되는 마당에 계속 감사원장직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정치적 중립성은 국민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 그간 최재형 감사원장 아래에서의 감사원이 해 왔던 감사 직무가 정치적으로 오염되고, 오해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여권이 그를 공격하는 용어로서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다른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 참여와 대권 도전을 선언할 것인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지대하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명분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온갖 언론을 통해서 퍼붓는 저주와 악담은 놔두고라도, 감사위원을 비서로 뽑아가는 대통령,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의 무도함에 그만큼 버텼으면 충분하다. 그가 정치 참여를 할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여당은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그를 향해 연일 십자포화를 쏘아대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인 윤호중 같은 사람은 그를 ‘탈영병’으로 표현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586 운동권이 언제부터 대한민국 군대를 신성시하여 탈영을 범죄로 인식하였는지, 하여튼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쨌건 어떻게든 나쁜 낙인을 찍어 보려는 가상한 노력은 알겠으나, 탈영은 정상적인 군대 조직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 정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 진단하고 정의하였듯이 소수가 정치적 이권을 갖고 돈과 특혜를 나눠먹는 패거리 권력집단을 핵으로 한다. 이런 정치체제를 일컫는 용어가 있다. “도둑정치(Kleptocracy, Thievocracy)”가 그 것이다.  윤 의원의 말은 권력 사유화의 망을 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나간 배신감의 토로로 들린다.
 

감사원은 그 직무의 특성상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국가 정책 운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두루두루 살펴보는 기관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이런 입체적 조망 속에서 패거리로 권력을 사유화하여 이권과 돈을 나눠먹는 부패한 흐름을 보지 못 했을 리 없다. 최 전 감사원장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다면 그것은 탈영한 것이 아니라, 마적떼의 본질을 보고 박차고 나와 토벌대장이 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Democracy)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도둑정치(Kleptocracy)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내는 일만큼 대의와 명분이 당당한 것이 또 있을까.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