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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무트 전투, 전쟁의 향방을 바꿀까?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러시아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바흐무트의 건물들이 폐허로 남아 있다. AP 뉴시스

 

 

무기지원, 약속으로 결전의지 다진 서방·러시아
퇴각 전망 일축하고 바흐무트 사수 밝힌 우크라
전장 군인 용맹함보다 폭력과 파괴에 착잡한 마음


4주 만에 돌아오는 칼럼 마감일이 이번에는 굉장히 빨리 돌아온 것 같다. 상당히 오랫동안 전선이 고착화되고 전쟁이 방향을 잃고 장기화되는 듯이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난 한 달간은 국제무대와 전선 모두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이번 전쟁의 직간접적 당사국은 모두 이 전쟁에 진심임을 다시 한번 표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5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군사지원을 약속했고, 이어 폴란드를 방문해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년 만에 이뤄진 국정 연설에서 전쟁 책임을 서방에 돌리고 미-러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인 뉴스타트 협정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국 수호자의 날' 행사에서는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을 애국자라고 칭송했다. 반면에 유럽연합(EU) 국가들은 9일 열린 EU국방장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신속한 탄약 지원 및 탄약 공동 조달을 합의해 결속을 다졌다.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나면 우울한 현실에 다시금 직면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바흐무트 전투가 그것이다. 화려한 말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바흐무트 전투는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전선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러시아군이 조금씩 진격해 바흐무트를 3면에서 에워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바흐무트 내의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수 있는 도로는 1개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식 표현으로 '까쫄(котёл: 가마솥)'이라고 부르는 포위망의 일환으로 전형적인 소비에트 군사독트린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펼쳤던 25만 명의 독일군을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래픽=김문중기자

 


실제로 가마솥 포위망이 형성됐다면, 그 포위망에 걸려든 군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첫째, 빠르게 퇴각해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방어선을 구축하거나 반격을 준비한다. 둘째, 더 많은 군 병력과 탄약, 무기를 투입해서 가마솥 안에서부터 밖으로 돌파한다. 셋째, 포위하고 있는 적군을 다시금 더 큰 포위망으로 에워싸서 공격한다. 앞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소련군 승리는 바로 이 세 번째 방식으로 이룬 것이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병력 및 무기 손실을 줄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일단 퇴각이 정답일 것이고, 적진을 돌파할 만큼 충분한 병력과 무기가 제공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버티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여기에 군의 사기, 여론의 추이 변화 등을 고려한다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진다.


우크라이나군의 최종 선택은 무엇인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 바흐무트 결사 사수 의사를 밝혔다. 이것은 우크라이나군이 퇴각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과연 젤렌스키 대통령다운 결정이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자세히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결정의 주체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바흐무트 방어 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과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의 의견에 찬성했다고 표함으로써 이 결정이 자신이 아니라 군 내부의 결정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결정이기 때문이다.


바흐무트의 러시아로의 함락의 가능성은 이미 바흐무트의 전략적 중요성이 논의되는 순간부터 점쳐졌다. 우크라이나군이 잘 지키고 있다면 전략적 가치를 논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바흐무트의 전략적 가치를 폄하하는 발언은 서방 측 군사전문가나 논평가, 우크라이나 군지도부 쪽에서 먼저 나왔다. 도대체 왜 러시아군은 전략적 가치가 없는 바흐무트를 위해 죽도록 싸울까 하는 것이 기본 질문이었다. 이제 바흐무트가 함락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청난 무리수를 두면서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의 전략적 중요성을 불현듯 다시 깨달은 듯하다. 젤렌스키 대통령 스스로가 바흐무트 함락이 러시아군에 크라마토르스크, 슬라뱐스크로 나아가는 '열린 길'을 제공한다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바흐무트를 사수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용맹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마솥의 끓는 물에 던져지는 병사들을 생각하면 진정 마음이 착잡하다. 전쟁이 폭력, 파괴, 죽음을 동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이 전쟁의 모든 추이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제목 바흐무트 전투, 전쟁의 향방을 바꿀까?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작성자 박채원
작성일 23.03.15 조회수 591
첨부파일 지난달-27일-우크라이나-도네츠크주에서-러시아군과-가장-치열한-전투가-벌어지고-있는-바흐무트의-건물들이-폐허로-남아-있다.jpg (64.7 KB) 그래픽=김문중기자.jpg (202.7 KB) 구분 학부공지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러시아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바흐무트의 건물들이 폐허로 남아 있다. AP 뉴시스

 

 

무기지원, 약속으로 결전의지 다진 서방·러시아
퇴각 전망 일축하고 바흐무트 사수 밝힌 우크라
전장 군인 용맹함보다 폭력과 파괴에 착잡한 마음


4주 만에 돌아오는 칼럼 마감일이 이번에는 굉장히 빨리 돌아온 것 같다. 상당히 오랫동안 전선이 고착화되고 전쟁이 방향을 잃고 장기화되는 듯이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난 한 달간은 국제무대와 전선 모두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이번 전쟁의 직간접적 당사국은 모두 이 전쟁에 진심임을 다시 한번 표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5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군사지원을 약속했고, 이어 폴란드를 방문해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년 만에 이뤄진 국정 연설에서 전쟁 책임을 서방에 돌리고 미-러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인 뉴스타트 협정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국 수호자의 날' 행사에서는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을 애국자라고 칭송했다. 반면에 유럽연합(EU) 국가들은 9일 열린 EU국방장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신속한 탄약 지원 및 탄약 공동 조달을 합의해 결속을 다졌다.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나면 우울한 현실에 다시금 직면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바흐무트 전투가 그것이다. 화려한 말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바흐무트 전투는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전선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러시아군이 조금씩 진격해 바흐무트를 3면에서 에워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바흐무트 내의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수 있는 도로는 1개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식 표현으로 '까쫄(котёл: 가마솥)'이라고 부르는 포위망의 일환으로 전형적인 소비에트 군사독트린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펼쳤던 25만 명의 독일군을 포위해 항복을 받아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래픽=김문중기자

 


실제로 가마솥 포위망이 형성됐다면, 그 포위망에 걸려든 군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첫째, 빠르게 퇴각해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방어선을 구축하거나 반격을 준비한다. 둘째, 더 많은 군 병력과 탄약, 무기를 투입해서 가마솥 안에서부터 밖으로 돌파한다. 셋째, 포위하고 있는 적군을 다시금 더 큰 포위망으로 에워싸서 공격한다. 앞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소련군 승리는 바로 이 세 번째 방식으로 이룬 것이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병력 및 무기 손실을 줄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일단 퇴각이 정답일 것이고, 적진을 돌파할 만큼 충분한 병력과 무기가 제공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버티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여기에 군의 사기, 여론의 추이 변화 등을 고려한다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진다.


우크라이나군의 최종 선택은 무엇인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 바흐무트 결사 사수 의사를 밝혔다. 이것은 우크라이나군이 퇴각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과연 젤렌스키 대통령다운 결정이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자세히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결정의 주체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바흐무트 방어 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과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의 의견에 찬성했다고 표함으로써 이 결정이 자신이 아니라 군 내부의 결정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결정이기 때문이다.


바흐무트의 러시아로의 함락의 가능성은 이미 바흐무트의 전략적 중요성이 논의되는 순간부터 점쳐졌다. 우크라이나군이 잘 지키고 있다면 전략적 가치를 논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바흐무트의 전략적 가치를 폄하하는 발언은 서방 측 군사전문가나 논평가, 우크라이나 군지도부 쪽에서 먼저 나왔다. 도대체 왜 러시아군은 전략적 가치가 없는 바흐무트를 위해 죽도록 싸울까 하는 것이 기본 질문이었다. 이제 바흐무트가 함락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청난 무리수를 두면서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의 전략적 중요성을 불현듯 다시 깨달은 듯하다. 젤렌스키 대통령 스스로가 바흐무트 함락이 러시아군에 크라마토르스크, 슬라뱐스크로 나아가는 '열린 길'을 제공한다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바흐무트를 사수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용맹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마솥의 끓는 물에 던져지는 병사들을 생각하면 진정 마음이 착잡하다. 전쟁이 폭력, 파괴, 죽음을 동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이 전쟁의 모든 추이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