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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 모퉁이 악기 객석에 알린 '타악기 代父'

  • 04.03.03 / 중앙
2004년 03월 02일 (화) 21:14

[중앙일보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이 부분은 바다에 정박 중인 군함에 녹을 떼기 위해 망치질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여러 명이 동시에 두드리니까 리듬이 엇갈려야 어울리죠."

지난달 28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예술관 음악학부 연습실. 실로폰.비브라폰.마림바.심벌.공.탐탐.차임.탬버린.마라카스…. 30평 남짓한 연습실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팀파니를 비롯해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타악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는 포커스 타악기 앙상블(음악감독 김훈태)이 오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박동욱 선생 고희 기념 음악회'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 제자들 9일 헌정음악회 선사


작곡자인 박동욱(70.한국타악인회 명예회장)씨가 곁에 서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쇠판을 망치로 치는 대목이 등장하는 '마스트 Ⅰ'. 박씨가 1979년 해군 복무시절 들었던 소리를 회상하며 쓴, 해군군악대의 충무공 음악제에 위촉받았던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타악기의 대부'박동욱씨의 칠순을 맞아 제자들이 그의 대표작을 한 무대에 올리는 헌정 음악회다. '마스트 Ⅰ'을 비롯,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원추'(80년), 브라스밴드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마스트 Ⅱ-바다로 세계로'(98년) 등 박씨의 대표작을 들려준다. 칠순 기념으로 포커스 타악기 앙상블이 스승에게 위촉한 팀파니 독주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메타포'도 초연한다. '메타포'에선 박씨의 뒤를 이어 스틱과 말렛을 잡은 장녀 박윤(28)씨가 독주자로 나선다.


"어릴 때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불 때 들리던 소리를 재현해 보았습니다. 길이가 다른 대나무 통을 엮어 차임벨을 만들었어요. 국악기 편경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폰'이라는 악기도 제작했죠. 알루미늄폰은 세계 악기시장에 수출도 할 계획입니다."


국립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를 지낸 박씨는 83년 국내 최초로 타악기 독주회를 연 인물이다. 교향악단의 맨 구석에 있던 타악기를 전면에 부각시킨 개척자다. 일찍부터 우리 전통 가락의 음악적 가능성에 눈을 떠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82년 미국에 처음 소개해 뉴욕타임스에서 '불가사의한 리듬'이라는 격찬을 끌어냈다. 79년 국립교향악단의 첫 해외 순회공연에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올린, 타악기 앙상블과 관악 합주를 위한'대비(對比)'도 그의 작품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4백여 명의 타악기 주자들은 거의가 그의 문하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악기가 음악대학에서 '특수전공'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타악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박광서(한국예술종합학교).최경환(서울대).김훈태(국민대)등 전임 교수만도 세 명이나 된다. 서울 타악기 앙상블을 비롯, 아카데미.포커스.4 플러스.카로스 등 주요 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들이 주축이 된 타악기 앙상블의 리더도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작곡가 원일 등 국악 전공자들도 현대적 어법을 익히기 위해 자주 그의 스튜디오를 찾는다.


"타악기만큼 영혼을 울리는 원초적인 악기도 없죠.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자연친화적인 음색을 지녔어요. 현대음악과 국악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해요. 제자들에게 외국 유학을 가기 전에 사물놀이 가락은 꼭 익혀두라고 일러줍니다."


*** 큰딸이 아버지 代이어


박씨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악기 박물관을 포함하는 '타악기 예술센터'설립을 위해 뛰어 다녔다. 전세계 타악기를 한 자리에 전시하면서 직접 악기를 두드려보면서 음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족 나들이 코스로 만들겠다는 것. 인터넷과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작곡가들에게 창작의 산실을 마련해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평생 악보만 들여다 보고 살아온 그에게 박물관 설립은 혼자 힘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타악기 센터 건립은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요즘엔 국악과 양악을 넘나들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 lully@joongang.co.kr > 사진=신인섭 기자 < shinis@joongang.co.kr >



▶ 박동욱은 1935년 서울 출생.한국전쟁 당시 해군 군악학교 입학, 8년간 군악대에 복무. 26세때 서울시향 입단. 뉴욕 매네스 음대 졸업 후 미국서 교향악단 단원 겸 교수 생활. 73년 귀국, KBS 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 팀파니 수석. 81년 한국타악인회를 창립,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을 지낸 김혜자(추계예대)교수가 그의 아내다.


제목 교향악단 모퉁이 악기 객석에 알린 '타악기 代父' 작성자 중앙
작성일 04.03.03 조회수 10016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2004년 03월 02일 (화) 21:14

[중앙일보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이 부분은 바다에 정박 중인 군함에 녹을 떼기 위해 망치질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여러 명이 동시에 두드리니까 리듬이 엇갈려야 어울리죠."

지난달 28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예술관 음악학부 연습실. 실로폰.비브라폰.마림바.심벌.공.탐탐.차임.탬버린.마라카스…. 30평 남짓한 연습실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팀파니를 비롯해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타악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는 포커스 타악기 앙상블(음악감독 김훈태)이 오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박동욱 선생 고희 기념 음악회'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 제자들 9일 헌정음악회 선사


작곡자인 박동욱(70.한국타악인회 명예회장)씨가 곁에 서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쇠판을 망치로 치는 대목이 등장하는 '마스트 Ⅰ'. 박씨가 1979년 해군 복무시절 들었던 소리를 회상하며 쓴, 해군군악대의 충무공 음악제에 위촉받았던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타악기의 대부'박동욱씨의 칠순을 맞아 제자들이 그의 대표작을 한 무대에 올리는 헌정 음악회다. '마스트 Ⅰ'을 비롯,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원추'(80년), 브라스밴드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마스트 Ⅱ-바다로 세계로'(98년) 등 박씨의 대표작을 들려준다. 칠순 기념으로 포커스 타악기 앙상블이 스승에게 위촉한 팀파니 독주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메타포'도 초연한다. '메타포'에선 박씨의 뒤를 이어 스틱과 말렛을 잡은 장녀 박윤(28)씨가 독주자로 나선다.


"어릴 때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불 때 들리던 소리를 재현해 보았습니다. 길이가 다른 대나무 통을 엮어 차임벨을 만들었어요. 국악기 편경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폰'이라는 악기도 제작했죠. 알루미늄폰은 세계 악기시장에 수출도 할 계획입니다."


국립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를 지낸 박씨는 83년 국내 최초로 타악기 독주회를 연 인물이다. 교향악단의 맨 구석에 있던 타악기를 전면에 부각시킨 개척자다. 일찍부터 우리 전통 가락의 음악적 가능성에 눈을 떠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82년 미국에 처음 소개해 뉴욕타임스에서 '불가사의한 리듬'이라는 격찬을 끌어냈다. 79년 국립교향악단의 첫 해외 순회공연에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올린, 타악기 앙상블과 관악 합주를 위한'대비(對比)'도 그의 작품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4백여 명의 타악기 주자들은 거의가 그의 문하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악기가 음악대학에서 '특수전공'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타악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박광서(한국예술종합학교).최경환(서울대).김훈태(국민대)등 전임 교수만도 세 명이나 된다. 서울 타악기 앙상블을 비롯, 아카데미.포커스.4 플러스.카로스 등 주요 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들이 주축이 된 타악기 앙상블의 리더도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작곡가 원일 등 국악 전공자들도 현대적 어법을 익히기 위해 자주 그의 스튜디오를 찾는다.


"타악기만큼 영혼을 울리는 원초적인 악기도 없죠.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자연친화적인 음색을 지녔어요. 현대음악과 국악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해요. 제자들에게 외국 유학을 가기 전에 사물놀이 가락은 꼭 익혀두라고 일러줍니다."


*** 큰딸이 아버지 代이어


박씨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악기 박물관을 포함하는 '타악기 예술센터'설립을 위해 뛰어 다녔다. 전세계 타악기를 한 자리에 전시하면서 직접 악기를 두드려보면서 음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족 나들이 코스로 만들겠다는 것. 인터넷과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작곡가들에게 창작의 산실을 마련해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평생 악보만 들여다 보고 살아온 그에게 박물관 설립은 혼자 힘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타악기 센터 건립은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요즘엔 국악과 양악을 넘나들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 lully@joongang.co.kr > 사진=신인섭 기자 < shinis@joongang.co.kr >



▶ 박동욱은 1935년 서울 출생.한국전쟁 당시 해군 군악학교 입학, 8년간 군악대에 복무. 26세때 서울시향 입단. 뉴욕 매네스 음대 졸업 후 미국서 교향악단 단원 겸 교수 생활. 73년 귀국, KBS 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 팀파니 수석. 81년 한국타악인회를 창립,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을 지낸 김혜자(추계예대)교수가 그의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