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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경상대학

언론속의 국민

권여현교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 전

  • 04.03.03 / 경향
2004년 03월 02일 (화) 19:17

작가 권여현씨(국민대 교수)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전이 오늘부터 내달 7일까지 열리는 사비나 미술관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보이는 커다란 그림은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만찬 테이블에는 물감과 붓이 올려져 있고, 예수와 제자들의 얼굴이 다를 뿐 아니라, 붓질도 극장간판처럼 어설프다. 그 옆에는 약간 낯선 ‘모나리자’도 걸려 있다.

“예수는 제 얼굴이고, 다른 열두제자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입니다. 우리가 차린 ‘명화의 만찬’에 오라는 환영인사를 대신한 거라고 할까요? 이 전시회에 걸린 작품 모두 국내외의 명화들을 패러디한 겁니다. 얼굴은 거의 저와 학생들이고, 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부분은 스스로 그렸어요. 2년전 ‘사제(師弟) 프로젝트’로 기획해 ‘누가 어떤 작품, 어떤 포즈에 어울릴 것인지’를 토론한 이후 사진을 찍고 작품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얼핏 둘러본 전시장 곳곳에는 교과서나 미술교양서에서 익히 보아온 친숙한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그림과 친숙해졌으니, 이쯤해서 작가에게 기획의도를 들어보자.


권교수는 지난 몇년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해 걸인이나 노숙자 등 여러 인물로 변해 사진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번엔 여러 학생들을 참여시켜 동서고금의 유명 작품들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이전의 작업이 ‘내가 바라보는 나’였다면, 지금의 작업은 ‘남들이 바라보는 나’인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라고 느낄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제자들과 여러 명화 속에서의 역할 분담 토의를 거쳤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쁜 역할,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 역할은 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남들이 어떤 사람에게 안 좋은 평가를 내려도 그 사람 스스로는 그걸 수긍하기 힘든 거죠. 또 자신의 이미지와 맞는다고 생각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다고 하는 역할이 다를 때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1층에는 라파엘로의 ‘수태고지’,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프리마벨라(봄의 여신)’처럼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대부분 권교수와 학생들이지만, 여성의 누드 부분은 전문모델이 대신했다. 2층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벽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와 초기 르네상스 작가 마사치오의 ‘낙원추방’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 계단을 다 내려서면 곧바로 다비드 상과 변기위에 앉은 반가사유상의 패러디 작품, 그리고 그 작품들을 비추는 거울이 문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변기는 뒤샹의 소변기를 뒤집은 레디메이드 작품 ‘샘’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래서 계단을 내려오는 관람객은 바로 작품과 함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시대와 배경이 서로 판이한 ‘동서고금’ 이미지가 패러디되어 문에 달린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마치 ‘이미지들이 소통하는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밀레의 ‘만종’, 고야의 ‘1808년 5월3일’,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서양의 명화와 함께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원더우먼·스파이더맨·슈퍼맨과 같은 대중문화의 캐릭터, 안중근·윤봉길 의사, 마라톤 영웅 손기정씨의 사진까지.


이 패러디 작품들이 ‘친숙한 이미지의 낯섦’을 통해 친숙한 ‘나’의 낯선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02)736-4371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제목 권여현교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 전 작성자 경향
작성일 04.03.03 조회수 9442
첨부파일 구분 학부공지
2004년 03월 02일 (화) 19:17

작가 권여현씨(국민대 교수)의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전이 오늘부터 내달 7일까지 열리는 사비나 미술관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보이는 커다란 그림은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만찬 테이블에는 물감과 붓이 올려져 있고, 예수와 제자들의 얼굴이 다를 뿐 아니라, 붓질도 극장간판처럼 어설프다. 그 옆에는 약간 낯선 ‘모나리자’도 걸려 있다.

“예수는 제 얼굴이고, 다른 열두제자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입니다. 우리가 차린 ‘명화의 만찬’에 오라는 환영인사를 대신한 거라고 할까요? 이 전시회에 걸린 작품 모두 국내외의 명화들을 패러디한 겁니다. 얼굴은 거의 저와 학생들이고, 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부분은 스스로 그렸어요. 2년전 ‘사제(師弟) 프로젝트’로 기획해 ‘누가 어떤 작품, 어떤 포즈에 어울릴 것인지’를 토론한 이후 사진을 찍고 작품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얼핏 둘러본 전시장 곳곳에는 교과서나 미술교양서에서 익히 보아온 친숙한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그림과 친숙해졌으니, 이쯤해서 작가에게 기획의도를 들어보자.


권교수는 지난 몇년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해 걸인이나 노숙자 등 여러 인물로 변해 사진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번엔 여러 학생들을 참여시켜 동서고금의 유명 작품들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이전의 작업이 ‘내가 바라보는 나’였다면, 지금의 작업은 ‘남들이 바라보는 나’인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라고 느낄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제자들과 여러 명화 속에서의 역할 분담 토의를 거쳤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쁜 역할,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 역할은 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남들이 어떤 사람에게 안 좋은 평가를 내려도 그 사람 스스로는 그걸 수긍하기 힘든 거죠. 또 자신의 이미지와 맞는다고 생각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다고 하는 역할이 다를 때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1층에는 라파엘로의 ‘수태고지’,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프리마벨라(봄의 여신)’처럼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대부분 권교수와 학생들이지만, 여성의 누드 부분은 전문모델이 대신했다. 2층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벽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와 초기 르네상스 작가 마사치오의 ‘낙원추방’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 계단을 다 내려서면 곧바로 다비드 상과 변기위에 앉은 반가사유상의 패러디 작품, 그리고 그 작품들을 비추는 거울이 문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변기는 뒤샹의 소변기를 뒤집은 레디메이드 작품 ‘샘’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래서 계단을 내려오는 관람객은 바로 작품과 함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시대와 배경이 서로 판이한 ‘동서고금’ 이미지가 패러디되어 문에 달린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마치 ‘이미지들이 소통하는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밀레의 ‘만종’, 고야의 ‘1808년 5월3일’,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서양의 명화와 함께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원더우먼·스파이더맨·슈퍼맨과 같은 대중문화의 캐릭터, 안중근·윤봉길 의사, 마라톤 영웅 손기정씨의 사진까지.


이 패러디 작품들이 ‘친숙한 이미지의 낯섦’을 통해 친숙한 ‘나’의 낯선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02)736-4371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